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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봉사

[봉사] 건축봉사_해비타트


한 해 두번씩은 봉사하러 해비타트에 간다

선린인터넷고를 다니면서 동아리의 정점을 찍은 터라 술만 먹는 대학교 동아리가 식상해 보였었다.

 

고등학생 때 동아리 활동은 책도 출판해 보고 창의력경진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씨름하던 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친구와 함께라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인천대 송도캠퍼스는 내게 너무 먼 학교였고 통학만으로도 지치는 학교였다. 통학이 5~6시간이라니.. 강남을 지나서인 이유도 있지만 .. 서울 진입하는 고속도로부터가 너무 막혔다.

 

통학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길을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어떨지 상상도 안간다. 그래도 가장 깊은 인천대 까진 안가니까 갈만한가.. 하긴 우리집은 서울 동쪽 끝으로 끝과 서쪽 바다 끝이었으니.. 다시 떠올려도 지긋지긋하다.. 

 

어쩌면 나는 오빠보다 먼저 자취를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돈도 돈이고 상상만으로도 외로워서 엄두도 안났지만..

공사판으로 둘러 쌓였었던 그 때의 송도는 정말 무서웠다

 

장거리통학은 너무 힘들다

버스 창가에 지는 분홍 빛 노을이 아니었으면 학교를 졸업도 못했을 것 같다. 마음에 차지않는 학점을 받았음에도 재수강 하지않고 버틴 건.. 노을과 밤샘과제 할 때 바라보았던 새벽하늘 덕이라 믿는다

 

통학만으로도 버거운 내게 동아리란.. 눈에도 안 찼던 일이었고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서 거기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때 교수님이 대학원 들어올 생각 없냐 했었지만 파사드미디어 할거라고 대차게 거절했던 기억이...난다 (aㅏaㅏ 이때부터 였나요..)

 

여기까지 옛날이야기는 각설하고 중요한 건 우리학교에 해비타트와 같은 건축동아리가 있었다면 무조건 들었을 거란 것이다

 

왜 없었던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난 왜 내가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

신청했던 해외건축봉사 마다 떨어져서 그랬나

 

미국친구가 건축봉사를 매주 나가 배운 것으로 낡은 집을 일 쉬는 날마다 수선한다는 이야길 듣고 봉사비용을 지불 해서라도 나가게 되었다

 

친구가 벽체를 갈아 엎고 타일을 깔고 욕조를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런 현장 모습.. 보고도 아는게 없어서 말하지 못한 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론 수업은 들었지만 이론을 적용하여 생각할 노력을 안했단 걸 들킨 기분이었다

 

해비타트를 나가며 느낀 것은 건축동아리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는 것

 

특히 번개건축은 기초부터 건축을 하기 시작해 구조물과 지붕까지 제작하는 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단 건 학생으로써 큰 경험이자 경력이고 

그 모든 비용을 학교에서 지원해 주니 얼마나 큰 혜택이란 말인가 나도 없으면 내가 동아리 만들어서 할걸!!!

 

동아리방도 자기공간이 없는 건축학도에겐 너무 큰 ㅠㅠㅠㅠㅠ 은혜로움인데 

 

너무 아둔하게 산 것 같다

다음에 태어나면 핀란드나 스위스에서 태어나야지

이번 생은 ~~ㅎ휴